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길 위에서

3. “걸리 시대(Gully Epoch)” 임무의 피켈 본문

서재의 등반가/한국 알피니즘의 시원 임무와 아처

3. “걸리 시대(Gully Epoch)” 임무의 피켈

雪夜小酌 2024. 11. 5. 15:22

■ 한국 알피니즘의 시원 임무(林茂) ②

 
 

  “걸리 시대(Gully Epoch)” 임무의 피켈

   

임무는 암벽등반에 대한 글이나 그의 등반기에서 피켈 사용의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도봉산 선인봉 정면벽(註: 서면) 현수하강 사진을 보면 다리 아래에 피켈이 놓여있다.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스포츠 알피니즘’은 암벽등반으로 구현되었고 당시 등반에 피켈을 사용했다. 클레멘트 아처가 인수봉 등반 시 알펜스톡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 장대 후크를 사용하였고 임무 또한 암벽등반 시 피켈을 지참하였으며, 그 자취는 1930대 중반 장대후크를 사용한 ‘무레사네의 클라이머’ 최봉칙의 인수C 코스 등반에 까지 이어진다.
 

 
북한산 만경대 선 임무 그리고 그의 도봉산 선인봉 정면벽 현수하강

 
 

19세기 후반 서구에서는, 피켈(아이스엑스·아이스피켈)의 중요성은 빠르게 증가하였고, 그것은 로프 그리고 아이젠과 함께 등반가들의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여겨졌다. 피켈이 개발되기 전에도 몇몇 알프스의 가이드들은 눈과 얼음에서 계단을 만들어 오를 수 있도록 일반적인 나무용 도끼를 사용했고, “알프스의 황금시대” 초기 단계에 알파인스톡과 도끼의 결합인 아이스엑스는 알프스 지역에서 사용하던 아이스피켈과 어느 정도 비슷한 형태로 발달하였다. 이 새로운 도구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1864년에 "Alpine Club"은 마침내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이견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전적인 형태의 아이스엑스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당시 알프스 암벽등반에서 피켈은 눈과 빙벽에서의 등반보다 유용성이 없지만, 등반 시 또 하나의 손과 발의 역할을 했다. 눈, 얼음, 풀 또는 잡초가 덮인 레지를 오를 때 사용하며 크랙에 피크를 넣고 샤프트를 아래 바위에 단단히 고정한 후여 헤드는 손잡이나 발판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빌레이 포인트가 부족할 경우, 깊은 헤더(heather)나 풀이 바위를 덮고 있는 레지나 테라스에서는 스탠스가 확실하지 않아도 스파이크를 로프가 당겨지는 쪽과 반대편으로 비스듬히 깊게 박고 로프를 낮게 통과시켜 샤프트 주위의 풀과 헤더에 추가 마찰을 가하며 빌레이를 보기도 했다.
 

 
잔디 경사면과 슬랩에서의  피켈 사용

(좌) 중간의 클라이머는 피켈을 아래쪽에 디뎌 ‘또 하나의 발과 손의 역할’로 사용하고 있고 톱과 라스트는 풀이 덮인 바위에서 피켈로 빌레이를 보고 있다. (우) 슬랩에서 피켈을 스탠드(Ice Axe Foothold)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당시(1908년)에 인공등반(Not Artificial Aid)으로 여기지 않았다. 라스트는 우측 손으로 판상 절리의 얕게 튀어나온 부분에 로프를 걸어 지지하고 있다.(안쓰럽군.^^;) 바위에 엎드려 눈보다는 손을 더듬어 홀드를 찾던 시대다.

 
 
1920년대 후반 일본의 암벽등반 교재인 《岩登》(1930)에는 절벽을 이룬 암벽의 하강이나 미끄러운 초지의 급사면과 폭이 넓은 룬제, 물길을 이루는 크랙 등에서 티롤형의 피켈을 사용하였고 하강 시에는 피켈을 로프에 매달아 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이야마 다츠오(飯山達雄)는 초기 선인봉 서면 코스 등반에서 “오른쪽 끝으로 통하는 크레프트의 홀드를 잡고 4m정도 오르면 비교적 편한 풀밭에 나무도 있다. A피크와 만장봉과의 안부를 왼쪽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길이 4m정도의 길게 펼쳐진 침니가 나타난다. 이곳을 오르면 다시 풀밭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A, B 피크의 캠프가 나온다.”고 하였고 또 만장봉 서면 코스의 30m 침니 직전 테라스에서 “이것을 오르면 좁은 테라스로 길지는 않지만 옆으로 늘어서면 3-4인은 충분히 머무를 수 있다. 물론 확보 장소로써는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이 테라스의 왼쪽으로부터 수직으로 좁은 침니가 30m정도 갈라져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임무의 초기 개척등반은 크랙, 침니 위주인 암벽등반의 “걸리 시대(Gully Epoch)”다. 임무가 피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그는 아처와 마찬가지로 피켈의 피크를 크랙에 걸거나 헤드를 손잡이나 발판으로 사용했으며 좁은 테라스에서 빌레이용으로 사용했을 경우가 있겠다. 그리고 첫 등반과 이어진 등반에서 코스를 정비하는데도 피켈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이야마는 임무와 인수C 코스 등반에서 피톤을 사용하지 않는 ‘자유등반’을 추구했다고 하는데, 당시 피켈의 사용은 인공등반으로 여기지 않았고 이이야마가 말하는 ‘자유등반’의 범주에 속했다.
 
 
 

1. 〈The Axe on Rocks〉, 《Mountain Craft》. 1920, p.156
2. Maximilian Schachner, 〈Alpine Ausrüstung im Wandel. Bedeutsame Zäsuren im Alpinismus des 18. und 19. Jahrhunderts〉, Universität Wien, 2013
3. John Middendorf, 〈Climbing Pitons Early Evolution〉, Jul 28, 2021(bigwallgea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