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산(遊山)과 와유(臥遊)/학천에서 노닐다 (20)
길 위에서
「인왕제색도」의 기와집 주인은 누구인가?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는 3개의 시선 Who is the Owner of the Tile-roofed House in Inwang Jesaekdo?정민영 | Min Young Jung |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기와집의 주인을 찾아라!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그림 1)는 겸재 정선(1676~1759)이 76세에 노익장을 과시하 듯이 완성한 진경산수(眞景山水)의 걸작이다. 제목 그대로 비 갠 후 맑게 갠 인왕산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산자락에 안개가 자욱이 깔렸다. 화면을 압도하는 화강암봉의 괴량감, 부감법(俯瞰法)과 고원법(高遠法)의 동거, 과감한 붓질 등이 조형미를 드높인다. 필자도 이 지면을 통해 널리 알려진 해석을 토..
마터호른(Matterhorn) Matterhorn (1879)Edward Theodore Compton 알프스에서 보낸 계절만큼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준 삶의 시기는 없습니다. 슬픈 추억도 있지만, 돌아보고 싶은 추억도 많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때 우리의 희망과 야망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성공과 실패를 떠올리고, 우리가 나누었던 정다운 우정과 따뜻한 동지애를 기억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는 위험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등반을 함께 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슬픈 날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이도 흔치 않은 그 날들, 여름 아침의 햇살과 밝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울함이 거대한 봉우리를 가리는 것처럼 보였던, 친구를 잃은 것을 애도했던 그..
인왕제색도의 이춘제 가옥 이 글은 김가희의 〈鄭敾과 李春躋 家門의 繪畵 酬應 硏究 : 《西園帖》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2. 정선과 이춘제 회화수용’ 중 인왕제색도 관련 부분이다. “그런데 서원첩> 속 서원소정도> 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와 지리적 위치가 같아 홍미롭다(도 18). 서원소정도> 의 배경이 되는 곳은 옥류동과 세심대 사이의 인왕산 자락 아래이다. 서원이 이춘제의 후원이었으므로 서원소정도> 의 우측 하단에 보이는 기와집은 이춘제의 저택이 될 것이다. 가옥에서 소나무가 다섯 그루 심어진 둔덕으로 이어지는 길은 후원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춘제 소유의 모정과 그의 가옥은 기다란 담벼락으로 둘러져있다. 이런 지형적 특징은 인왕제색도> 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
■ 바위글씨 2 - 문사동(問師洞) 덧없는 인생 한나절의 한가함문사동(問師洞) 바위글씨 도봉산 도봉동천(道峯洞天)의 동문(洞門) 윗쪽의 가학루(駕鶴樓) 터에는 풍광이 뛰어나 ‘제일동천(第一洞天)’ 이라 새겨져 있을 만도 하다. 물길을 따라 오르면, 옛 영국사(寧國寺) 터에 들어선 도봉서원 앞으로 김수증(金壽增)의 ‘고산앙지(高山仰止)’ 등 선비들의 바위글씨가 산재해있다. 그 위에서 계류가 나뉘는데 좌측을 문사동계곡이라 한다. 금강암 앞쪽에 ‘복호동천(伏虎洞天)’ 바위글씨가 있고 그 위로 한참을 오르면 계단을 이룬 와폭(臥瀑) 위쪽의 바위면에 ‘문사동(問師洞)’ 바위글씨가 있다. 이 바위글씨를 두고, “《주례(周禮)》에 따르면 ‘문(問)’은 예를 갖추어 누군가를 불러들인다는 뜻으로 ‘문사동(問師洞..
■ 바위글씨 1 - 북한산의 바위글씨 북한산의 바위글씨 현황 지역바위글씨조성자조성시기위치 동부浮石禁標 부석금표총융청摠戎廳1788.8.20(영조12)구천계곡 초입禁標 금표총융청1788.8.20(영조12)구천계곡 초입思陵浮石監役畢記사릉부석감역필기사평 이준司評 李焌1699.1.(숙종 25)구천계곡 초입九天銀瀑 李伸書구천은폭 이신서인평대군 이요麟坪大君 李㴭17c 중반구천계곡 폭포宮禁塲 궁금장한성부漢城府조선시대보광사 인근彰□ 宮林塲禁 창□ 궁림장금한성부조선시대도선사 만경폭彌勒瀑同遊 미륵폭동유조현명趙顯命 외1746 여름도선사 만경폭李載克, 高□植 이재극,고○식이재극, 고□식 도선사 만경폭素園 소원최남선崔南善20c 중반우이동남부김익왕(金益枉) 외 유산명단기김익왕金益枉 등조선시대화계사 옆 계곡烏啄泉 오탁천 ..
■ 진경산수 8필운상화(弼雲賞花) 화제가 “八十二OO”으로 제대로 읽히지가 않는데, 정선이 82세의 원숙한 필체로 그렸다고 알려진 “청송당(聴松堂)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좌측 석대(石臺)는 배화여고 별관 뒤쪽의 “필운대(弼雲臺)” 바위글씨가 새겨진 자리이고 우측으로 누정 뒷편의 산자락에 좌정한 선비들은 인왕의 봄빛이 가득한 날의 아회(雅會)를 즐기고 있겠다. 정훈서의 칠송정(七松亭)이 아닌가 하며, 겸재 노년의 필체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 聴松堂, 組本水墨 18.2X23.6cm, 國立中央博物館藏 《韓國의 美 謙齋 鄭敾》, 중앙일보·동양방송, 1979. 5. 25
■ 진경산수 7자하동 일간정( 一間亭) 자하정 계류에 평산 신씨 바위글씨가 있다. 일간정이 있던 자리가 아닌가 한다.- 글씨를 새긴이(申碩徵)는 신씨 세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관악산의 푸르른 산빛이 몇 번이나 시야에 들어오려 하자, 마음이 흔들려 막을 수 없었다....10리쯤 가서 자하동(紫霞洞)으로 들어가 한 칸짜리 정자 위에서 쉬었는데, 정자는 신씨(申氏)의 장원(莊園)이었다. 계곡물이 산골짜기에서 흘러오는데 숲이 뒤덮고 있어 아득히 근원을 알 수 없었다. 물이 정자 아래에 이르러 바위를 만나 튀어 오르는 것은 포말(泡沫)을 일으키고, 모이는 것은 녹음(綠陰)을 이루었다가 결국은 다시 일렁이다 빠져나가 동문(洞門)을 감돌아 멀리 흘러가니 마치 흰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였다. 언덕 위에는 철쭉..
■ 진경산수 6 관악산 연주대 단은(檀隱) 윤영시(尹榮始,1835년(헌종1)-미상)가 그린 연주대도(戀主臺圖)다. 관악산 연주대를 그렸는데 응진전(應眞殿)은 보이지 않고 축석만이 표현되어 있다. 뒤로는 한강 그리고 아차산과 불암, 수락산을 원경으로 그렸다. 좌측 하단의 바위에 두 사람이 대를 쳐다보고 있는데 지금의 연주대 조망데크다. 응진전으로 가는 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연주대 정상의 매바위(遮日岩) 하단으로 길이 나 있다.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886(고종 23년)년 행문스님이 판관 윤태일과 신도 이선덕행의 도움으로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기 전으로 여겨진다. ◀연주대도(戀主臺圖), 개인 소장, 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