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벽운동천(碧雲洞天)을 거닐다 본문
■ 와유(臥遊) 7
벽운동천(碧雲洞天)
"회운동(晦雲洞)은 수락산의 회곡(晦谷)으로, 부친이 살고자 했던 바로 그 땅이다. 그리고 회곡에 숨었다 하여 호를 회은(晦隱)이라 하였다. 남학명은 뜻을 이루지 못한 부친을 대신해 이곳에 재사(齋숨)를 짓고 1691년 박세채(朴世采)로부터 기문을 받아 걸었다. 남학명은 이 곳에 집을 정한 기념으로 이의춘(李宜春), 최석정 등과 어울려 시를 주고받았다. 물가에 나란히 앉아 술잔을 돌리기도 하였다. 정자 옆의 소나무 뿌리 아래에 작은 항아리를 묻고 술에 푸른 솔잎을 담가두었다가 단풍과 국화가 아름다운 8월 그믐날 최석정과 그 아들 최창대 (崔昌大), 족제 (族弟) 남학증(南鶴增) 등과 어울려 항아리를 열고 술자리를 벌인 일도 있다." - 이종묵, 《조선의 문화공간 3》
수락산 남서쪽의 맑은 계곡인 벽운동(碧雲洞)은 원래 회운동(晦雲洞 혹은 晦谷)이었으나 남구만이 회운암의 누각을 벽운루(碧雲樓)라고 제한 후 벽운동으로 불렸다. 그의 아들 남학명은 부친의 뜻을 살펴 지금의 예룸예술학교 자리에 ‘수락산재(水落山齋)’를 짓고 당호를 ‘회운재(晦雲齋)’라 하여 동천(洞天)을 소유하였다.
회운재를 돌아나가는 완만한 암반 계류에는 벽운동천(碧雲洞天), 국봉(菊峰), 소국(小菊), 운천대(雲湶臺) 바위글씨가 있다. 인근을 살피면 암반을 타고 흐르는 폭포의 비말을 흰 구름에 비한 운폭(雲瀑)과 거울 형태의 못을 지칭하는 경회(鏡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주자(朱子)가 〈관서유감(觀書有感)〉에서 “반 묘의 모진 못이 거울처럼 열렸는데, 하늘 빛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네. 묻거니 어찌하여 그처럼 맑은가. 근원에서 활수가 흘러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하였는데, 벽운동천의 바위글씨는 이렇듯 마음을 닦고 정진하라는 뜻을 담았다. 그 못가 바위틈에 국화가 피었다.
1. 이종묵, 〈용인 비파담과 남구만〉, 《조선의 문화공간 3》 , 2007
2. 서울시 노원구 향토문화재 지정 고시(2022. 1. 6)의 ' 수락산 각석군' 지정사유에 "각석 종류로는 벽운동천(碧雲洞天), 국봉(菊峰), 소국(小菊), 운천대(雲泉臺, 註: 雲湶臺의 오기)가 있으며 조성자 미상의 4기의 각석으로 계곡의 바위에 활달한 필치로 구성되어 있음. 글씨의 훼손을 염려하여 보존차원에서 향토문화재로 지정해 보존 및 활용할 가치가 있음."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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