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낙선재 빙열문(氷裂紋) 본문
■ 와유(臥遊) 9
낙선재 빙열문(氷裂紋)
창덕궁 낙선재의 누마루 중앙 기둥열 하부 장초석 사이에는 얼음이 쪼개진 듯 한 빙열(氷裂)문양의 장식벽체가 설치되어 있다.
얼음은 흔히 아주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비유하며, 얼음을 넣은 항아리라는 뜻의 빙호(氷壺), 옥호(玉壺)는 신선 세계와 같은 경치를 일컫기도 한다. 빙열(氷裂)문양은 단단한 얼음의 변화무쌍한 균열이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다시 봄을 맞이하면 만물이 소생하여 생기를 띠게 되니, 모든 것이 아름답고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는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단순하고 경쾌한 사회 풍조를 표방했던 북송의 인문학적 배경 아래 남송 관요와 가요(哥窰)의 청자에 주로 나타난 문양이다.
윤봉조(尹鳳朝, 1680~1761)는 〈도성을 나와 강가의 집으로 돌아오다(出城還江居)〉에서 “서호의 푸르름이 막 풀리고 2월의 강은 얼음이 갈라지네 강 가운데 갈매기가 이미 날아와 봄 정취는 저절로 즐겁다.(西湖綠初渙. 二月江冰裂. 已有中流鷗. 春聲自怡悅)”하여 봄을 맞아 2월을 맞아 서호의 얼음이 갈라지며 이미 봄이 왔음을 노래하였고, 박지원은 〈성경잡지(盛京雜識)〉 고동록(古董錄)에서 관요의 청자 중에 ‘빙열문’이 상품(上品)으로, “고(觚), 준(尊), 지(觶) 이 세 가지는 모두 술그릇이지만 역시 꽃을 꽂아서 평상시의 맑은 감상에 이바지될 것입니다. 대체로 관요(官窰)는 그 법식이나 품격이 가요(哥窰)와 다름없으나, 빛깔은 분청(粉靑) 혹은 난백(卵白)을 취하였으되 맑고도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것이 상품이고...무늬는 얼음장이 깨진 것처럼 된 것, 또는 뱀장어 피무늬같이 된 것이 상품”고 하였다.
빙열문양을 바탕으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벌과 나비가 등장하기도 하며, 특히 빙열문에 매화와 대나무 문양은 세한(歲寒, 역경을 이기는 것을 뜻함)의 뜻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문양이다. 유몽인은 〈진사가 되어 남쪽 공주로 돌아가는 성칙우(호선)를 전송하는 백운시 포의록(送成則優 好善 進士南歸公州百韻 布衣錄)〉에서 “찬 얼음 갈라지자 하얀 혼백(매화) 일찍 돌아오고 물총새 지저귀자 붉은 꽃 피어나네(素魂早返寒氷裂. 紅萼敷榮翠鳥啾)”고 노래하였다.
내년 봄에 빙열문 창살을 빗어 밖으로 매화 한 그루를 심고 오는 봄을 맞이해 보리라.
◀ 빙열매죽문(氷裂梅竹紋) 능화판과 인출 판화. 조선후기. 고판화박물관 소장.
1. 徐炜, 〈青瓷中的冰裂纹及其延伸应用探析〉, 《文物鉴定与鉴赏》(2022年 12期)
2. 한국고전번역원
포암집(圃巖集) 한국고전번역원 영인표점
어우집(於于集) 장유승 · 최예심(공역)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열하일기(熱河日記) 〈古董錄〉 이가원(역)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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