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문사동 바위글씨 본문
■ 바위글씨 2 - 문사동(問師洞)
덧없는 인생 한나절의 한가함
문사동(問師洞) 바위글씨
도봉산 도봉동천(道峯洞天)의 동문(洞門) 윗쪽의 가학루(駕鶴樓) 터에는 풍광이 뛰어나 ‘제일동천(第一洞天)’ 이라 새겨져 있을 만도 하다. 물길을 따라 오르면, 옛 영국사(寧國寺) 터에 들어선 도봉서원 앞으로 김수증(金壽增)의 ‘고산앙지(高山仰止)’ 등 선비들의 바위글씨가 산재해있다. 그 위에서 계류가 나뉘는데 좌측을 문사동계곡이라 한다. 금강암 앞쪽에 ‘복호동천(伏虎洞天)’ 바위글씨가 있고 그 위로 한참을 오르면 계단을 이룬 와폭(臥瀑) 위쪽의 바위면에 ‘문사동(問師洞)’ 바위글씨가 있다.
이 바위글씨를 두고, “《주례(周禮)》에 따르면 ‘문(問)’은 예를 갖추어 누군가를 불러들인다는 뜻으로 ‘문사동(問師洞)’은 스승을 모시어 맞아들이는 곳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문사(問師)’하면, 은자(隱者)가 이 산속에 있지만 구름이 깊어 있는 곳을 모르겠다는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가 떠오른다.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賈島(가도)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그런데 초입의 복호동천(伏虎洞天), 화락정(和樂亭)터의 화락정(和樂亭), 서광폭(西光瀑) 등의 바위글씨는 가학루나 서원터 계류의 바위글씨 새김에 비해 조악하다. 근대에 새겨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월간 《山》(1985. 1)의 도봉산특집 지명 유래에서, 40여년간 도봉산에 거처한 녹야선원(鹿野禪院) 주지 강만월(康滿月. 72) 스님은 “도봉산 계곡 중에서 옛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문사동(問師洞) 계곡. 이 계곡 이름을 초서로 음각한 지점이 가장 경관이 좋은 곳이다. 만월스님은 이 음각은 40년 전 자기가 아는 사람이 새겼다고 덧붙였다. 문사동계곡의 지류인 속칭 거북골이니 용어천계곡이니 하는 것은 그 시절에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고 하여 ‘문사동(問師洞)’ 바위글씨는 지금으로부터 80여 년에 새긴 바위글씨라고 전한다.
만월 스님이 알던 처사가 동천을 이름한 ‘문사동(問師洞)’의 ‘사(師)’는 은자(隱者)를 뜻함이겠다. 그리고 당시 도봉산의 어는 사찰에서 수행하실 때인지는 모르나, 만월 스님을 찾아 ‘덧없는 인생 한나절의 한가함’을 구하던 처사의 정황도 그려진다. 당나라 이섭(李涉)의 시 〈제학림사승사(題鶴林寺僧舍)〉에 “죽원을 지나다가 스님 만나 담화하니, 덧없는 인생 한나절의 한가함을 얻었구나.(因過竹院逢僧話, 又得浮生半日閑.)”라고 하였다. 이 시를 주제로 한 겸재 정선의 시의도(詩意圖)인 〈죽원봉승(竹院逢僧)〉을 덧붙인다.
“분명히 定型山水 속에 포함시켜야 할 내용인데 米家山法에 의한 밋밋한 主峯이 벌거벗은 듯 노출되어 深壑의 幽達한 情趣는 간곳없이 사라졌다。 다만 濃墨으로 거칠게 처리한 疏林과 疏松을 배경으로 一間 草屋을 배설하고 鼠足點 비슷한 點法에 淡墨으로 量染하여 竹林을 둘러놓았다. 우리 주변의 어느 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즉 중국의 定型山水에 그대로 우리 山川을 대입시켜놓은 것이다. 여기에 결재의 정형산수가 가지는 한계성이 있는 것이다. 題辭는 겸재와 거의 동시대를 산 雲川 李宜炳(1683 ~?) 이 唐 李沙의 登山이란 詩로 대신하여 썼다.「종일로록 정신없이 취하여 잠만 자다가 홀연히 봄이 다 갔단 말 듣고 억지로 산에 올랐네. 竹院을 지나가다 스님 만나 얘기 나누니 어느덧 뜬구름 인생에 한나절을 그저 보냈네.(終日昏昏醇夢間、忽聞春畫强登山. 因過竹院逢僧話、像得浮生半日開.) ”
◀겸재 정선 〈죽원봉승(竹院逢僧)〉 - 최완수, 《韓國의 美 謙齋 鄭敾》(1979)
1. 도봉산 특집, 월간 《山》(1985. 1)
2. 《바위글씨전-한양사람들의 멋과 풍류》, 서울역사박물관, 2004.
3. 《韓國의 美 謙齋 鄭敾》, 중앙일보·동양방송, 1979. 5. 25
4. 최병준, 《全唐詩 卷477 題鶴林寺僧舍》,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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