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불성사를 가는 도중 길을 잃다 본문
■ 유산(遊山) 1
불성사를 가는 도중 길을 잃다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병오년(1786, 정조10) 봄 노량(鷺梁) 강가에 우거할 때 관악산을 유람하였다. 지금의 자하정 자하 신위의 누정에서 불성사로 가는 도중 길을 잃어 곤란을 겪었는데, 자하정에서 무너미고개를 넘어 좌측 계류를 따라 상류로 오르다 적당한 지점에서 우측으로 마른 계곡을 올라 8봉능선의 4~5봉 사이 고개에 닿아야 하는데, 이 고갯길 초입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고개에 오르면 우측 바위에 불성사를 오가는 고개임을 알리는 “城” 새겨져 있다.
“정자를 경유하여 다시 10리쯤 가니 길이 험준하여 말을 탈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탔던 말과 마부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가며 칡넝쿨을 뚫고 도랑을 건넜다. 앞에서 이끄는 자가 절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잃고서 동서(東西)를 분간하지 못하였다. 당시에 해가 지평선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고 길에는 길을 물을 만한 나무꾼도 없었다. 종자들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갑자기 이숙현이 날랜 걸음으로 높은 봉우리에 올라 좌우를 둘러보는 것을 보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그가 돌아오자 질책하고 꾸짖었다. 얼마 되지 않아 흰 승복(僧服)을 입은 네댓 사람이 어느 곳에선가 쏜살같이 산을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종자들이 모두 승려들이 왔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숙현이 절의 위치를 멀리서 파악하고는 먼저 몸소 절에 들어가 승려들에게 우리 일행들이 거기 있다고 알려 주었던 것이다. 이에 승려를 앞세우고 대략 4, 5리를 가서 절에 당도하였다. 절의 이름은 불성사(佛性寺)였다. 절은 삼면(三面)이 봉우리로 둘려 있고 앞 한 면만 높고 널찍하니 막힘이 없었다. 문을 열고 앉거나 누우니 또한 천 리 밖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1.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 번암집(樊巖集) / 양정기 · 김정기(공역) ,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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