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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인왕제색도」의 기와집 주인은 누구인가? 본문

유산(遊山)과 와유(臥遊)/학천에서 노닐다

「인왕제색도」의 기와집 주인은 누구인가?

雪夜小酌 2024. 11. 1. 19:55

「인왕제색도」의 기와집 주인은 누구인가?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는 3개의 시선 Who is the Owner of the Tile-roofed House in Inwang Jesaekdo?

정민영 | Min Young Jung |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기와집의 주인을 찾아라!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그림 1)는 겸재 정선(1676~1759)이 76세에 노익장을 과시하 듯이 완성한 진경산수(眞景山水)의 걸작이다. 제목 그대로 비 갠 후 맑게 갠 인왕산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산자락에 안개가 자욱이 깔렸다. 화면을 압도하는 화강암봉의 괴량감, 부감법(俯瞰法)과 고원법(高遠法)의 동거, 과감한 붓질 등이 조형미를 드높인다. 필자도 이 지면을 통해 널리 알려진 해석을 토대로 이 그림을 소개한 바 있다. 다시 이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정선 관련서와 논문 들을 보다가, 출판인으로서 재미있는 현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미술사 전공자들이 쓴 미술책과 미술사 전공은 안 했지만 미술책 저술가로 이름 있는 이들이 쓴 책의 차이에 새삼 눈이 갔다. 미술사가들은 「인왕제색도」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음을 암시하면서 이 그림을 언급하는 반면, 저술가들은 널리 공유된 해석에 근거 해서 「인왕제색도」를 드라마틱하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왕제색도」를 둘러싼 해석을 한 자리에 모아 보고, 이를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간단히 언급해보기로 한다. 현재까지 「인왕제색도」에 관한 해석은 ‘기와집의 주인 찾기’라 할 수 있는데, 주요해석은 다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정선이 친구의 쾌유를 빌 면서 그렸다. 이를테면 ‘우정의 서사(敍事)’가 되겠다.(미술사가 최완수/오주석) 두 번째는 정선이 그림을 그려서 모은 재산으로 증축한 자기 집을 그렸다. ‘성공의 서사’가 된다.(미술사가 홍선표) 세 번째는 주문자의 의뢰로 그렸다. ‘주문의 서사’다.(미술사가 김가희)... (중략)

 

 

 인왕산 도성대지도(부분)

 

 

미술사와 스토리텔링―미술사가와 저술가의 차이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앞의 두 가지 해석에는, 즉 ‘우정의 서사’와 ‘성공의 서사’에는 정선이 주체로 등장하는 반면, 후자의 ‘주문의 서사’에는 주문자가 주체가 되고 정선은 그림을 그려준 보조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흔히 스토리텔링의 비결로 ‘사실’과 ‘감동’, 그리고 ‘대중성’을 꼽는다. 이런 관점에 비춰보면, ‘우정의 서사’에는 이들 세 요소가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성공의 서사’에는 사실과 감동 같은 요소는 있지만 대중성은 미미하다. 반면에 ‘주문의 서사’에는 사실만 있고, 감동과 대중성은 아주 부족하다. ‘우정의 서사’가 널리 회자되는 데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하겠다. 다음에 소개하는 청소년 관련서에서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① 화가 정선은 그림 솜씨가 좋았기에 주변의 관료들과 학자들이 쉴 새 없이 그림을 주문했 어. 이 그림은 이 집의 주인을 위하여 정선이 그린 것일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이 집의 주 인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어. ② 정선의 편지를 다시 보면, 어느 해 이 그림을 그렸는지 밝히고 있지. 신미윤월, 즉 1751년 윤달, 정선의 나이 76세 때야. 어떤 학자는 정선과 벗이며 시인인 이병연이 그 다음 해에 죽었다는 이유로 정선이 벗의 집을 그려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증거는 없어. ③ 어떤 학자는 정선 자신이 노후에 마련한 저택을 그린 것이라 해석해. 하지만 그 역시 증거는 없지. 말하자면 추측만 있을 뿐이야.”(고연희, 『정선, 눈앞에 보이는 듯 한 풍경』, 97~98쪽, 숫자는 필자 표기)

 

이 대목은 미술사가 고연희(1965~)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에 나오는 「인왕제색도」의 한 부분이다. 그는 이 글에서, 위에서 살펴본 세 가지 해석이 있음을 암시만 하고 있다.(이렇기는 2007년에 출간한 『조선시대 산수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맨 앞쪽(①)은 김가희의 해석과 연관되고, 두 번째(②)는 최완수·오주석의 해석, 세 번째(③)는 홍선표의 해석이 된다. 그런데 ① 이 김가희의 해석을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지는 않다. 생전에 「인왕제색도」를 소장했던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심환지가 이 그림에 붙인 제시에 근거하여 한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고연희의 생각은 ‘우정의 서사’도, ‘성공의 서사’도 아닌 ‘주문의 서사’에 가까운 것 같다.) 반면에 저술가 최석조(1964~)가 쓴 청소년 책 『겸재 정선, 조선의 산수를 그리다』는 스토리 텔링에 강한 ‘우정의 서사’를 받아들여, 이를 감동적으로 연출한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5 월 25일 오후에야 그쳤습니다. 엿새 동안 쉬지 않고 내리던 비였습니다. 정선은 빗물이 군데 군데 고인 앞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비에 푹 젖은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 중턱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골짜기에는 없던 폭포도 몇 개 생겨났습니다. (중략) / “사천, 꼬옥 일어 나게, 꼬옥!” 정선은 이병연이 병을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붓을 꾹꾹 눌렀습니다.”(140~141쪽) 이런 서술은 사실(史實)로 이성에 호소하는 미술사가와 스토리로 감성에 호소하는 대중 저술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독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는 ‘우정의 서사’와 함께하는 「인왕제색도」다. 이 ‘우정의 서사’가 종이책과 인터넷을 통해 폭넓게 확산되는 가운데, 연구자들 사이에는 이 그림의 기와집 주인 찾기가 계속되고 있다.

 

 

KSCE magazine

미술이야기 CULTURE & ART 1

제67권 제11호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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