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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진경산수 7자하동 일간정( 一間亭) 자하정 계류에 평산 신씨 바위글씨가 있다. 일간정이 있던 자리가 아닌가 한다.- 글씨를 새긴이(申碩徵)는 신씨 세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관악산의 푸르른 산빛이 몇 번이나 시야에 들어오려 하자, 마음이 흔들려 막을 수 없었다....10리쯤 가서 자하동(紫霞洞)으로 들어가 한 칸짜리 정자 위에서 쉬었는데, 정자는 신씨(申氏)의 장원(莊園)이었다. 계곡물이 산골짜기에서 흘러오는데 숲이 뒤덮고 있어 아득히 근원을 알 수 없었다. 물이 정자 아래에 이르러 바위를 만나 튀어 오르는 것은 포말(泡沫)을 일으키고, 모이는 것은 녹음(綠陰)을 이루었다가 결국은 다시 일렁이다 빠져나가 동문(洞門)을 감돌아 멀리 흘러가니 마치 흰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였다. 언덕 위에는 철쭉..
■ 진경산수 6 관악산 연주대 단은(檀隱) 윤영시(尹榮始,1835년(헌종1)-미상)가 그린 연주대도(戀主臺圖)다. 관악산 연주대를 그렸는데 응진전(應眞殿)은 보이지 않고 축석만이 표현되어 있다. 뒤로는 한강 그리고 아차산과 불암, 수락산을 원경으로 그렸다. 좌측 하단의 바위에 두 사람이 대를 쳐다보고 있는데 지금의 연주대 조망데크다. 응진전으로 가는 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연주대 정상의 매바위(遮日岩) 하단으로 길이 나 있다.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886(고종 23년)년 행문스님이 판관 윤태일과 신도 이선덕행의 도움으로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기 전으로 여겨진다. ◀연주대도(戀主臺圖), 개인 소장, 출처 미상
■ 와유(臥遊) 9 낙선재 빙열문(氷裂紋) 창덕궁 낙선재의 누마루 중앙 기둥열 하부 장초석 사이에는 얼음이 쪼개진 듯 한 빙열(氷裂)문양의 장식벽체가 설치되어 있다. 얼음은 흔히 아주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비유하며, 얼음을 넣은 항아리라는 뜻의 빙호(氷壺), 옥호(玉壺)는 신선 세계와 같은 경치를 일컫기도 한다. 빙열(氷裂)문양은 단단한 얼음의 변화무쌍한 균열이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다시 봄을 맞이하면 만물이 소생하여 생기를 띠게 되니, 모든 것이 아름답고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는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단순하고 경쾌한 사회 풍조를 표방했던 북송의 인문학적 배경 아래 남송 관요와 가요(哥窰)의 청자에 주로 나타난 문양이다. 윤봉조(尹鳳朝, 1680~1761)는 〈도성을 나와 강가의..
■ 와유(臥遊) 8 은한이 비치던 도봉서원의 석지(石池) 도봉동천(道峯洞天)은 서원터 앞쪽과 가학루(駕鶴樓)터의 계류가 뛰어나다. 그 중에 서원터 계곡에 홈이 파진 큰 바위가 기울여져 있는데 자연적으로 생겨난 포트홀과는 달리 가공된 석지(石池)가 아닌가 한다.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의 〈도봉서원 석지기(道峯書院石池記)〉에서 1630년 도봉서원을 찾았을 때, 서원 안에서 돌 받침을 보게 되었는데, 높이는 한 척이 못 되었고, 넓이는 한 길 정도 되었는데 돌 받침 밑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받침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전 영국사의 유적이라 치우고자 하였으나, 크고 무거운 데다 뿌리가 깊어 뽑을 수도 없고 단단하여 부술 수도 없어 윤순거가 연못을 만들고자 장인(匠人)을 불러 사방으로 새끼줄로 묶고 그 가운데..
■ 유산(遊山) 5여사천(如斯川), 흐르는 물과 같구나 서산(西山, 양주 노고산) 몽재거사(夢齋居士)의 누정이라도 있었던 듯하다. 이시선(李時善)이 미수(眉叟)의 유풍을 좇다가 머물며 자취를 남기다. “子在川上日, 逝者如斯夫인저 不舍畫夜로다. 공자께서 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가슴이 뭉클하다. '논어' '子罕(자한)'편의 이 章 을 읽으면 냇가에서 사색에 잠긴 魯叟(노수·노나라 노인 공자)를 만날 것만 같다. 川上은 냇물 위가 아니라 냇가를 말한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 뒤의 上은 그 언저리라는 뜻을 지닌다. 逝者의 逝는 어떤 곳을 향해 간다는 말이다. 如斯夫의 斯는 이 此 (차)와 같아서, 공자가 바라보는 이 냇물을 가리킨다. 구절 끝의 夫..
■ 와유(臥遊) 7 벽운동천(碧雲洞天) "회운동(晦雲洞)은 수락산의 회곡(晦谷)으로, 부친이 살고자 했던 바로 그 땅이다. 그리고 회곡에 숨었다 하여 호를 회은(晦隱)이라 하였다. 남학명은 뜻을 이루지 못한 부친을 대신해 이곳에 재사(齋숨)를 짓고 1691년 박세채(朴世采)로부터 기문을 받아 걸었다. 남학명은 이 곳에 집을 정한 기념으로 이의춘(李宜春), 최석정 등과 어울려 시를 주고받았다. 물가에 나란히 앉아 술잔을 돌리기도 하였다. 정자 옆의 소나무 뿌리 아래에 작은 항아리를 묻고 술에 푸른 솔잎을 담가두었다가 단풍과 국화가 아름다운 8월 그믐날 최석정과 그 아들 최창대 (崔昌大), 족제 (族弟) 남학증(南鶴增) 등과 어울려 항아리를 열고 술자리를 벌인 일도 있다." - 이종묵, 《조선의 문화공간 ..
■ 진경산수 2높이 올라 멀리 간 사람 바라보네 한국의 ‘Alpinism’은 인수봉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근교의 모든 암봉이 걸어올라갈 수 있지만 인수봉은 그렇지가 않았다. 도저히 오를 수가 없어보였다. 그 이유 하나로 시작된 이 땅의 알피니즘.오랜 세월 인수봉은 다양한 이미지로 기록되었다. 그냥 높은 봉우리로 산을 상징하였고 소의 뿔로 여겼으며, 멀리서보니 창같이 뾰족하게 생겼다고도 한다. 조선에서는 꼭대기에 뛰어나온 부분 때문에 부아암(負兒岩)이라고도 하였고 누구는 사찰의 풍경(風磬)을 떠올렸다. 조선 후기 경화세족들은 자신의 거처를 그림으로 남길 때, 인수봉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의 세도를 은연중 자랑하기도 했다. 동산계정도(東山溪亭圖, 김윤겸), 양주송추도(楊州松楸圖, 정황), 청담도(淸潭圖,정선)..
■ 우이동 이야기 2 한국의 레이크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우이동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는 1000 미터 이하의 낮은 산악지역으로 1880년에서 1914년 사이에 혁신적이고 새롭게 시도된 스포츠인 암벽등반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등산은 영국의 스노도니아(Snowdonia) 스코틀랜드 일부 지역과 알프스, 티롤(Tyrol), 돌로미테(Dolomites), 작센(Saxony) 그리고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암벽등반 발생지”로서 흔히 이곳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일컫는다. 18세기 이후부터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그림 같고 "자연적인" 미학, 시각적 아름다움과 산의 풍경은 영국의 주요 "낭만적인" 시인, 작가, 예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