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산(遊山)과 와유(臥遊)/학천에서 노닐다 (20)
길 위에서
■ 와유(臥遊) 9 낙선재 빙열문(氷裂紋) 창덕궁 낙선재의 누마루 중앙 기둥열 하부 장초석 사이에는 얼음이 쪼개진 듯 한 빙열(氷裂)문양의 장식벽체가 설치되어 있다. 얼음은 흔히 아주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비유하며, 얼음을 넣은 항아리라는 뜻의 빙호(氷壺), 옥호(玉壺)는 신선 세계와 같은 경치를 일컫기도 한다. 빙열(氷裂)문양은 단단한 얼음의 변화무쌍한 균열이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다시 봄을 맞이하면 만물이 소생하여 생기를 띠게 되니, 모든 것이 아름답고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는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단순하고 경쾌한 사회 풍조를 표방했던 북송의 인문학적 배경 아래 남송 관요와 가요(哥窰)의 청자에 주로 나타난 문양이다. 윤봉조(尹鳳朝, 1680~1761)는 〈도성을 나와 강가의..
■ 와유(臥遊) 8 은한이 비치던 도봉서원의 석지(石池) 도봉동천(道峯洞天)은 서원터 앞쪽과 가학루(駕鶴樓)터의 계류가 뛰어나다. 그 중에 서원터 계곡에 홈이 파진 큰 바위가 기울여져 있는데 자연적으로 생겨난 포트홀과는 달리 가공된 석지(石池)가 아닌가 한다.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의 〈도봉서원 석지기(道峯書院石池記)〉에서 1630년 도봉서원을 찾았을 때, 서원 안에서 돌 받침을 보게 되었는데, 높이는 한 척이 못 되었고, 넓이는 한 길 정도 되었는데 돌 받침 밑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받침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전 영국사의 유적이라 치우고자 하였으나, 크고 무거운 데다 뿌리가 깊어 뽑을 수도 없고 단단하여 부술 수도 없어 윤순거가 연못을 만들고자 장인(匠人)을 불러 사방으로 새끼줄로 묶고 그 가운데..
■ 유산(遊山) 5여사천(如斯川), 흐르는 물과 같구나 서산(西山, 양주 노고산) 몽재거사(夢齋居士)의 누정이라도 있었던 듯하다. 이시선(李時善)이 미수(眉叟)의 유풍을 좇다가 머물며 자취를 남기다. “子在川上日, 逝者如斯夫인저 不舍畫夜로다. 공자께서 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가슴이 뭉클하다. '논어' '子罕(자한)'편의 이 章 을 읽으면 냇가에서 사색에 잠긴 魯叟(노수·노나라 노인 공자)를 만날 것만 같다. 川上은 냇물 위가 아니라 냇가를 말한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 뒤의 上은 그 언저리라는 뜻을 지닌다. 逝者의 逝는 어떤 곳을 향해 간다는 말이다. 如斯夫의 斯는 이 此 (차)와 같아서, 공자가 바라보는 이 냇물을 가리킨다. 구절 끝의 夫..
■ 와유(臥遊) 7 벽운동천(碧雲洞天) "회운동(晦雲洞)은 수락산의 회곡(晦谷)으로, 부친이 살고자 했던 바로 그 땅이다. 그리고 회곡에 숨었다 하여 호를 회은(晦隱)이라 하였다. 남학명은 뜻을 이루지 못한 부친을 대신해 이곳에 재사(齋숨)를 짓고 1691년 박세채(朴世采)로부터 기문을 받아 걸었다. 남학명은 이 곳에 집을 정한 기념으로 이의춘(李宜春), 최석정 등과 어울려 시를 주고받았다. 물가에 나란히 앉아 술잔을 돌리기도 하였다. 정자 옆의 소나무 뿌리 아래에 작은 항아리를 묻고 술에 푸른 솔잎을 담가두었다가 단풍과 국화가 아름다운 8월 그믐날 최석정과 그 아들 최창대 (崔昌大), 족제 (族弟) 남학증(南鶴增) 등과 어울려 항아리를 열고 술자리를 벌인 일도 있다." - 이종묵, 《조선의 문화공간 ..
■ 진경산수 2높이 올라 멀리 간 사람 바라보네 한국의 ‘Alpinism’은 인수봉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근교의 모든 암봉이 걸어올라갈 수 있지만 인수봉은 그렇지가 않았다. 도저히 오를 수가 없어보였다. 그 이유 하나로 시작된 이 땅의 알피니즘.오랜 세월 인수봉은 다양한 이미지로 기록되었다. 그냥 높은 봉우리로 산을 상징하였고 소의 뿔로 여겼으며, 멀리서보니 창같이 뾰족하게 생겼다고도 한다. 조선에서는 꼭대기에 뛰어나온 부분 때문에 부아암(負兒岩)이라고도 하였고 누구는 사찰의 풍경(風磬)을 떠올렸다. 조선 후기 경화세족들은 자신의 거처를 그림으로 남길 때, 인수봉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의 세도를 은연중 자랑하기도 했다. 동산계정도(東山溪亭圖, 김윤겸), 양주송추도(楊州松楸圖, 정황), 청담도(淸潭圖,정선)..
■ 우이동 이야기 2 한국의 레이크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우이동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는 1000 미터 이하의 낮은 산악지역으로 1880년에서 1914년 사이에 혁신적이고 새롭게 시도된 스포츠인 암벽등반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등산은 영국의 스노도니아(Snowdonia) 스코틀랜드 일부 지역과 알프스, 티롤(Tyrol), 돌로미테(Dolomites), 작센(Saxony) 그리고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암벽등반 발생지”로서 흔히 이곳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일컫는다. 18세기 이후부터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그림 같고 "자연적인" 미학, 시각적 아름다움과 산의 풍경은 영국의 주요 "낭만적인" 시인, 작가, 예술가 ..
■ 와유(臥遊) 6 나를 좋아한 이와 함께 손 잡고 떠나련다 고의(古意) 이색(李穡 : 1328~1396) / 목은시고(牧隱詩藁)화락한 기러기는 해뜨는 때가 아침이요雝雝鴈旭日始旦 흠뻑 내린 이슬은 해가 아니면 못 말리리湛湛露匪陽不晞 경각인들 늦출 수 있으랴 이미 급해졌으니其虛其徐旣亟只 나를 좋아한 이와 함께 손 잡고 떠나련다惠而好我携手歸 *《시경》 패풍 북풍(北風)에, “북풍이 차갑게 불어오고, 눈이 성하게 내리도다. 나를 좋아한 이와 더불어 손 잡고 함께 떠나리라. 행여 늦출 수 있으랴. 이미 급해졌도다.[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携手同行 其虛其邪 旣亟只且]” 한 데서 온 말이다. - 임정기 (역), 한국고전종합DB
■ 유산(遊山) 2 사슴을 타고 나린 흰 눈썹의 산신 사슴바위의 꿈 고양 노고산 독재동(篤才洞) 지붕바위 앞 너럭바위(石亭)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위가 양 귀를 쫑긋한 채 엎드려 있는 사슴 같다. 미수 허목을 기억하고 이곳을 찾은 이시선이 그의 유풍을 남기고자 ‘사슴바위(石鹿)’라 새겼고, 이후 언제고 추사의 “夢齋”글을 더했겠다. "금상 9년 여름에 소명(召命)을 받고 고양에 이르러서 병으로 사직하고 고봉(高峯)의 죽원(竹院)에서 머물다가 5일 만에 서산(西山)에 이르러 주인과 함께 독재동(篤才洞)의 계곡에서 놀았다. 위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그 아래 돌이 깎아지른 듯 가파르고 물이 떨어지는 곳에 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그 사이를 손으로 가리키면서,‘저곳에는 집을 지을 만하고, 저곳에는..